생각정리

공평함에 대하여 – 정보의 불균형 속에서

kani 2025. 9. 1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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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함이란 뭘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늘 부딪히는 질문이 있다.
“과연 무엇이 공평한 것일까?”

어린 시절에는 공평하다는 것이 단순했다. 케이크를 나눌 때 똑같이 자르면 공평했고, 용돈을 받을 때 형과 같은 금액을 받으면 공평했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고, 회사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 들어와 보니 공평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나는 요즘 들어 ‘진짜 불공평은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지난 생활을 투영해 보자면

내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진짜 불공평은 바로 ‘정보의 불균형’에서 온다.

 


 

정보가 권력이 되는 순간

회사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CEO일 수도 있고, HR일 수도 있고, 아니면 특정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리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일수록 결정권이 크고, 발언의 무게가 달라진다.

문제는 이 정보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의 실패 가능성을 나는 알고 있지만 팀원들은 모를 수 있다. 회사가 곧 인력 구조조정을 할 수도 있다는 정보를 나는 들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열심히 일하고 있을 수 있다.

이때 나는 늘 갈등한다. “이 정보를 어디까지, 어떻게 나눠야 하는가?”


'권고 사직’이라는 단어 앞에서

얼마 전 나는 이전 글에서 ‘권고 사직’에 대한 내 생각을 잠깐 다뤘다. 회사는 일정한 기준을 세워, 그 기준에 따라 권고 사직 대상자를 정한다. 불행히도 그 기준 속에는 우리 팀원 중 한 명이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아직 당사자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무겁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직접 말해주고 싶었다. “조심해라, 이런 기준이 있고 너도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규정상 그리고.. 상황상, 내가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대신 나는 아침 스탠드업 미팅에서 이렇게 돌려 말했다.

“아마 이런 기준에 따라 권고 사직이 진행될 수도 있다.”

내 말이 누구에게 어떻게 들렸을까. 아마도 직접적으로 이해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랐다. 당사자가 그 힌트를 잡아채기를. 스스로 준비할 수 있기를. 그렇게 나는 직접 말할 수 없는 정보를 간접적으로 흘려야 하는 괴로움 속에 하루를 보냈다.


직접 말할 수 없는 이유

사실 가장 공평한 방법은 뭐겠는가?
모든 정보를 모두에게 똑같이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오해도 없고, 억울할 일도 없다. 하지만 회사라는 공간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정보에는 시기라는 것이 있고, 전달 방식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정보는 미리 공개하면 더 큰 혼란을 낳는다. 어떤 정보는 당사자에게 먼저 알려야 하고, 어떤 정보는 전체가 함께 들어야 한다.

그러니 리더인 나는 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금 이 정보를 흘리는 것이 공평할까, 아니면 아직 감춰두는 것이 공평할까?”


불공평을 감당하는 사람

결국 불공평을 가장 크게 감당하는 사람은 리더다.
나는 안다. 팀원들은 모른다. 그 사이에서 나는 불공평하다.

예를 들어, 팀원 A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회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안다. 하지만 A는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A에게 "너 지금 잘하고 있어도 회사에서 널 중요하게 보지 않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때 A가 느끼는 공평함과 내가 느끼는 공평함은 전혀 다르다.
A는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지?”라고 불공평을 느낀다. 나는 “그렇다고 모든 걸 다 말해줄 수도 없는데…”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정보의 불균형을 줄이는 방법

그렇다면 방법은 없을까?
나는 투명성이 답이라고 믿는다. 물론 모든 것을 100% 공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대한 많이, 최대한 솔직하게 나누는 것이다.

  • 불필요하게 감추지 않는다.
  •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은 공유한다.
  • 결과만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설명한다.

나는 이번 ‘권고 사직’ 건에서도 결국 기준을 공유했다. 하지만 모든 기준을 공유하지 못했다.
모두가 납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설명할 수 있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공평의 최소한이었다.


나만 알고 있는 정보의 무게

하지만 여전히, 나만 알고 있는 정보는 존재한다.
이 정보들은 무겁다. 때로는 잠을 설칠 정도로.

그 무게를 덜어내는 방법은 솔직히 많지 않다.
혼자 감당하거나, 아주 가까운 동료에게 털어놓거나, 아니면 이렇게 글로 쓰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결국 리더가 되지 않으면 모르는 고충이네.”
맞다. 리더가 되면서부터 나는 새로운 차원의 불공평을 알게 되었다.


진짜 공평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제 깨닫는다. 공평은 결과를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다.
진짜 공평은 정보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정직하게 참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이다. 될 수 없다.

 

적어도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지만, 말할 수 있는 만큼은 투명하게 나누는 것.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주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공평이다.

 


여전히 괴롭지만

나는 오늘도 괴롭다.
직접 말해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간접적으로 흘려야 하는 내 입장은 여전히 답답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 괴로움이 내가 리더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공평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공평을 지켜내려 애쓰는 것.
그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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