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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백반증 환자로 살아 간다는 것

카니 Kani's 2018. 8. 13. 03:07

태어나고 돌도 지나기전에, 온몸 구석구석 하얀 반점들이 나타났다. 내가 자라면서 하얀 점들은 점점 커지기도 했고

있던 것 들이없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생기기도하고.. 뭐.. 그런 병이다. 보기에만 좀 그런.. 


어렸을적부터 이런걸로 많이 놀림을 받아, 어머니께서는 무척이나 속상하시고 미안해 하셨다.

부모님 책임은 아닌데... 부모님께 어떻게 위로도 해드려야 할지 몰라 미안해했던 기억이난다.


초등학교 시절 몇몇 담임은 내 피부를 보고 그냥 대놓고 싫어 했으며, 차별대우를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부모님께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이 또한 부모님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기에..


치료를 시도한적이 없는건 아니다, 큰 기계안에서 자외선 치료도 받고, 약도 바르고, 독한 약도 먹었다.

피부약은 참 독했다. 치료는 고3시절에 시작했는데.. 독한약 그리고 치료를 받기위해 먼거리를 이동하는 건 당시 학업에 영향이 커 포기했다. 지금생각하면 좀 더 열심히 치료를 받을 걸 그랬다.


내게는 초등학교 친구가 거의 없다.(그나마 친한 친구들도 고등학교쯤 가서야 친해졌다.) 전학의 영향도 컷지만, 놀림을 많이 당해.. 사람을 피해서가 컷 던 것 같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가 없다. 그렇지만 지금 남아있는 친구들은 참 좋은 친구들이다. 늘 고맙다.


가장 큰 충격은 오히려 군 입대 시절이었다. 20살 겨울, 나는 공군에 입대 지원했다. 약 1주일간 체력검정과 신체검사를 통해 일정한 컷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집에 되돌아가야했다. 당시 경기가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군에 지원했고 커트라인이 많이 높아져 있었다. 무난히 체력테스트넘기고 마지막 신체검사를 할때였다. 넓은 실내 체육관에 지원자들을 모아놓고 하의 탈의를 시킨다음 남자의 중요 부위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사병들이 당시 검사를 진행했는데, 왠 병장하나가 '고환이상'이라고 말하면서 체크를 했다.(거기에도 백반증이 넓게 있었다) 당황했던 나는 백반증을 설명하며 이상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자기는 의사라면서 정밀검사로 넘겼다.(생각해보면 의사가아닌데..) 그리고 정밀검사를 받으러 향하던 도중에도 인솔자로 같이가면서 고환병X이라고 놀려됐던게 아직가지도 화가 많이 난다. 다행히 정밀검사한 군의관은 백반증은 입대불가사유가 아니라고 판정해주면서 무사히 입대하고, 전역할 수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군 전역후 그나마 얼굴쪽은 사라졌다. 좋은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했다.

다만 자식은 낳지 않으려고한다. 백반증은 유전성이 짙다. 나 역시 할아버지가 백반증이셨다.(우리 가족중엔 내가 유일하지만)

내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하고 싶진 않다.


위에서 부터 읽어보니 두서가 없다. 그냥 문뜩 요즘 더 심해지는 백반증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 두들겨본다


모든 백반증 환자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상처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남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당현하게 행복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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